종(鐘)의 생명은 맑고 청아한 종성(鐘聲)과 아름다운 문양의 장엄(莊嚴)에 있는바, 그 둘 중에 우선하는 것은 역시 소리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필히 종을 쳤는데, 당시에 종소리는 곧 하늘의 소리였던 것이다. 불가(佛家)에서 범종(梵鐘)의 소리는 곧 불법(佛法)의 소리이자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님의 소리라 하였다. 또한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종(巨鐘) 소리는 곧 하늘의 소리요, 군주가 온 백성의 안녕과 부국강병을 기원하는 선정의 소리였다. 따라서 고래(古來)로 온 세계의 치자(治者)들의 한결같이 거종을 주성하고 그 소리를 천하에 진동케 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종소리는 우리 민중의 마음속 깊은 정서에 감구지회(感舊之懷)의 존재로 남아 있다.

우리 민족이 세계에 내 놓을 만한 유산은 그리 많지 않다. 그 중에서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에밀레종)은 동.서양의 많은 학자들이 감탄하고 찬사를 아끼지 않은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이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에밀레종보다 더욱 크거나 오래된 종들이 다수 전해지고 있긴 하나 에밀레종이 한층 높은 품격의 찬사를 받는 까닭은 바로 그 소리의 우수성에 있는 것이다.

홍종사는 맑고 아름다운 종소리에 전력을 추구하는 주종회사이다. 특히 박한종 사장은 찬란한 우리의 종문화 전통을 현실속에서 이어가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종장(鐘匠)이다. 이 점은 필자가 홍종사의 산학협력으로 주종의 공동작업을 수행과정에서 느낀바 크다 하겠다. 더구나 16세라는 어린 시절부터 주종업에 발굴의 기량을 발휘하여, 종소리에 한 평생 불퇴전의 혼을 바쳐온 것은 그 동안의 주종 경력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1999년 홍종사에서 주성(鑄城)한 김천시민대종은 에밀레종과 비슷한 크기로 종소리가 매우 우수한 것으로 밝혀졌다. 타종결과 맑고 장중하며 매우 긴 여음이 에밀레종을 능가하는 걸작으로 확인된 것이다. 그런데 김천시민대종의 유두는 에밀레종과는 달리 주조가 매우 까다로운 돌출형으로 조형되었는바 바로 거기에서 소리의 노하우를 찾을 수 있다.

원래 돌출유두는 주조에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데 오죽하였으면 우리 민족의 위대한 걸작인 에밀레종에서도 그 조형을 마다하였겠는가.
근자에 발표된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러한 돌출유두가 종소리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주목을 끌었다. 즉 돌출형 유두의 종은 타격 시 단일한 주파수를 파생하여 단일음조를 형성케 되는데 이것은 곧 맑고 청아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돌기가 없는 경우에는 여러 개의 주파수가 발생하여 복음조를 파생시키기 때문에 복잡한 잡음이 발생하는 현상이 실험을 통하여 밝혀진 결과이다. 아울러 돌출유두는 대종의 조형성에서도 장중함과 상,하 비례적 안정감을 연출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한다.

사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상원사종과 같은 1천관 미만의 종들은 돌출유두의 조형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에밀레종과 같은 큰 종은 돌출유두의 조형에 매우 까다롭고 어려운 주조공정이 수반된다. 또한 주조 시에 발생되는 가스압의 원인으로 36개의 돌출유두중 단 한 개라도 주물이 차 오르지 않으면 자칫 그 종 전체가 실패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종소리를 위하여 필자가 설계하는 종은 항상 돌출형 유두를 선택하였고, 그것을 받아들인 주종사는 지금까지 홍종사뿐이었다. 이것은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종을 추구하는 종장이 구도의 열정을 불태우는 선사의 자세와도 같은 불굴의 정진에서 달성된 업적임이 분명하다.

오로지 주석청동만을 합금하여 세계 속에 찬란한 한국종의 주조전통을 오늘의 현실에서 이어가려는 박한종 종장의 의지는 자칫 지난날의 문화전통을 외면한 채 상업성에 치우친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에 대한 경종이 되리라고 본다. 앞으로도 훌륭한 종을 주성하기 위한 그의 각고의 노력이 보다 큰 결실을 맺어 또다시 천년을 우렁차게 진동한 이 시대 걸작의 조성(造成)을 기원하면서 그간의 노고를 위로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