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위대한 발명을 논할 때,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불의 이용’을 머리 속에 쉽게 떠올린다. 그러나 鍾 또한 인류문명사에 있어서 위대한 발명품 중에 하나이었다는 것을 인지하기가 쉽지 않다.
종은 지금으로부터 3,500여 년 전, 이미 중국의 商(殷)나라 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西周시대와 春秋戰國시대에는 각양 각색의 古銅器鍾이 다량으로 제작되었다. 그 용처도 다양하였다. 가장 신성한 의식으로는, 국왕이 하늘과 교통하기 위하여 치렀던 제사의식에 사용되었으며, 군대의 진군과 퇴각의 신호를 알리기 위해서도 사용되었다. 또한 각종의 잔치에 악기로, 시각을 알리는 도구로, 망자의 영혼을 천도하기 위한 제사의식에도 빼놓을 수 없는 도구였다. 이러한 용도를 주지한다면, 종은 上古史에 없어서는 안될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진시황 이후에는 통치의 수단으로 巨鍾이 鑄成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인도에서 탄생된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되자, 당시 대륙의 종문화와 습합되어 이른바 불교의 범종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오늘에 전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종은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에 있는 신라종(A.D.725년)이다. 안타깝게도 이 종은 현재 鍾口部에 발생한 크랙으로 인하여 타종을 못하고 있다. 다음으로 771년에 완성된 聖德大王神鍾이 현재 국립 경주박물관의 종각에 걸려있다. 이 종은 최근 종합조사를 통하여 그 상태의 완전함이 밝혀짐에 따라 새 천년에 다시 장엄한 종소리를 울리게 되었다. 조형미에서 세계적인 찬사를 받고 있는 성덕대왕신종은 이제 다시 그 장중하고도 아름다운 소리를 온 천하에 울리게 된 것이다.
한국종의 역사는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6세기에 그 흔적을 살필 수 있다. 그러나 유물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8세기 통일신라시대에는 한국종의 황금기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고려,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 1500여 년간의 장구한 세월동안 그 맥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한 가운데 한국종의 조형적 意匠은 시대에 따라 약간의 변모를 가져왔다.
우선 8세기에 창출된 신라종의 조형양식은 인접한 중국?일본과는 아주 판이한 조형성을 연출하고 있다. 이러한 신라종의 독특한 형상은 인류역사상 鍾의 종주국인 중국에서조차 상상할 수 없었던 놀라운 창의력의 기예이자 소산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고려중기에 이르러 또 다른 조형의 창의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그때까지 전해지고 있었던 신라종의 전형에 立上帶라는 특이한 조형요소를 추가로 장식하게 된 것이다. 다시 조선왕조 초기에는 기존의 조형에 중국종의 조형요소를 일부 수용한 이른바 韓?中混合樣式의 종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의 선조들은 끊임없는 조형적 창의성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한국종의 조형성을 창출해 내었던 것이다. 그러나 임란 이후로 내려오면서 불교의 衰落과 함께 한국종의 모습도 서서히 그 운을 같이 하였다. 그리고 해방이후 오늘날에 와서는 다시 신라종의 양식으로 복고하여 세계적으로 독특한 조형성을 계승시키고 있는 것이다.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弘鍾社는 비교적 짧은 創社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지난 16여 년 동안 고도의 성장을 이룩하였다. 이것은 弘鍾社가 지난 90년대에 들어 鑄成해낸 주요업적을 一瞥해 보아도 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주요 작품>
1991년 - 경남 청도 대국사 범종(7500관)
1995년 - 독립기념관 광복50주년 기념『통일의 종』(2600관)
1995년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100주년 기념종(500관)
1996년 - 부산시 『부산시민의 종』(6500관)
1998년 - 제주도 약천사 범종(5000관)
1999년 - 경북 김천시 『김천시민대종』(5000관)
1999년 - 경기도 안산시 『새천년의종』(3000관)
2000년 - 충북 음성군 『음성군민대종』(2000관)
2000년 - 경남 합천군 『합천군민대종』(3000관)
2001년 - 김해은하사 『신어범종』 (3300관) 영화 달마야 놀자 찰영지..
2002년 - 수원 『봉녕사 』(3300관)

그 동안에 홍종사에서 주성된 1천관(약 4ton) 이하의 사찰 범종을 제외하고도 단기간에 이루어진 각종 기념종의 주성성과는 실로 놀라운 업적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것의 원동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우선 홍종사를 창업한 朴漢鍾 사장의 이력을 참고한다면 쉽게 풀릴 수 있는 내용이다. 일찍이 16세라는 어린 나이에서부터 주물업에 종사하기 시작하였던 박 사장은 50대 초반 홍종사를 창업하기 이전, 이미 30여 년이 넘는 주조경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일찍이 30세 약관의 나이에 주조업계에서 인정받는 실력자로 성장했다. 그리고 국내 굴지의 주물회사에서 주조책임자라는 중책의 임무를 수행한바 있었다. 그렇게 오랜 주조업계 실무종사를 통하여 축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박 사장의 홍종사는 창업과 동시에 이미 벤처 수준의 기술을 넘어서 뛰어난 주종기술을 보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러한 점이 오늘날 홍종사를 국내 최고수준의 주종회사로 발돋움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주지하듯이, 우리 나라의 종은 두 가지 특성에서 세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장식문양의 아름다움에 있으며, 다른 하나는 독특한 종소리의 특성에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연구결과로 밝혀진 한국종의 주조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그 중, 비교적 소형종의 주조에 이용된 밀납주조법은 문양이 섬세하게 표현될 수 있는 장점을 나타낸다. 이러한 주조법으로 주성된 대표적인 종으로는 국보 제36호 상원사종(A.D. 725)을 들 수 있다. 상원사종의 각부 문양은 아주 세치한 양각의 문양이 섬세하게 주조된 모습이다. 두 번째는 회전 주형틀을 이용한 방식으로 대형종 주성에 이용된 주조방법이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나형용 박사의 최근 연구결과, 국보 29호 성덕대왕신종(A.D. 771: 속칭 에밀레종)이 이러한 방식으로 주조되었음을 밝힌바 있다.
홍종사의 주종방법은 철저하게 후자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보다 진보된 주종기술이 속속들이 연구되고 있는 오늘날 첨단과학시대에도 불구하고, 홍종사는 전통방식을 그대로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의 아름다운 종소리를 재현하려는 투철한 장인정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근자에 이르러 최첨단공법으로 주조되고 있는 종들은 문양의 섬세한 표현에서 강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소리에 있어서는 여전히 전통방식의 아름다운 종소리와는 다소 거리감을 감출 수 없다.
종의 우수성은 장식문양과 종소리의 아름다움 두 가지를 동시에 요구한다. 즉 표면에 장식된 각종 문양의 아름다움에 맑고 긴 여음의 종소리가 수반되었을 때 종의 탁월한 생명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따라서 弘鍾社는 淸雅하고 웅장하며 끊어질듯 이어지는 맥노리와 긴 여음의 한국종 소리를 재현하기 위하여 전통방식의 주조법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미래에 인정받는 위대한 문화유산의 재창출을 위한 숭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常生하는 투철한 匠人정신의 발로라 하겠다.
한편 종은 인류 역사에 가장 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조형물이다. 그것은 오늘에 전하는 인류 문화유산들 가운데 동종을 비롯하여 오로지 청동제 유물들만이 완연한 형상을 유지하고 있음에서 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1200년 이상을 전해 내려와 여전히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고 있는 에밀레종만을 보더라도 우리 종의 전통적 주조방식은 이미 그 생명력을 충분히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최첨단 공법과 신소재로 만들어진 종들이 그토록 오랜 수명을 유지한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따라서 주종에 있어서 전통방식의 창조적 계승과 발전은 이 시대의 鍾匠이 지향해야할 최상의 메커니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